화령전투전사

화령전투전사는?

화령전투는 1950년 7월17일 상곡리전투와 7월21일 동관리전투로 나눌 수 있으며, 국군이 후퇴를 거듭하던 암울한 시기에 6 · 25전쟁의 판도를 바꾸고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였으며, 멀게는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에까지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개요

전투기간

1950. 7. 17 ~ 7. 21(5일간)

전투지역

상주시 화서면 일원(상곡 · 하송 · 동관리 일원)

전투부대

  • 군 : 육군 제17연대(중령 김희준) 1대대(소령 이관수), 2대대(소령 송호림), 3대대(소령 오익경)
  • 군 : 제15사단(사단장 박성철) 48연대, 45연대

전투경과

당시상황

적군 15사단

1950년 3월 함북 횡령 신편, 원산 철원 충북괴산 갈령고개(977지방도) 상주(화서) 대구 · 부산 공격

아군 17연대

1948년 11월 경기 시흥 창설, 적 기습공격으로 제17연대 후퇴 옹진 인천 평택 청주 보은 함창으로 이동중(화령통과)

주민 및 경찰의 역할

북한군에 대한 신속한 이동 정보제공 및 지역 정찰활동 지원

주먹밥 및 탄약운반, 환자치료 지원 등

전투경과

적군 600여명 사살, 포로 50여명

아군 4명 전사, 부상 30명

노 획

박격포 36문, 대전차포 7문, 반전차포 2문, 기관총 53정, 소총 1,386정 등

의의

6 · 25전쟁 중 주민과 군, 경찰의 합작, 정찰과 매복작전으로 아군의 불리한 전세의 흐름을 바꾼 값진 승리

아(연합)군의 낙동강방어선 구축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제공한 전투로 평가
※ 보병 제17연대 전장병 1계급 특진(2,60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