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시대별 곶감에 대한 기록

시대별 곶감에 대한 기록

임금님에게 진상한 곶감

상주지역에 감은 15세기 전부터 자생하고 있었으며 기록을 통해서 예부터 상주지방의 풍토에 맞아 감이 많이 생산되었으며 품질이 좋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문헌에 공물(貢物), 토산(土産) 등 지역에서 생산되는 특산품으로 기록된 것을 통해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1454년)」 경상도의 공물에 홍시/곶감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예종실록 제2권(1468년)」에는 곶감의 공물을 상주에 나누어 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서 상주의 곶감은 조선시대부터 궁중 및 중앙관서에 상납하는 특산물로써 명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세종실록지리지(1454년)>

  • <예종실록 2권(1468년)>

[참고자료]

예종실록 2권(예종 즉위년 1468년)

신은 옛날 그대로 금이 나는 모든 고을에 나누어 정하여, 민생(民生)을 편안하게 하고 지리(地利)를 다하게 하기를 청합니다. 신이 또 들은바 경상도(慶尙道)의 일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옛날 진주(晉州)의 그 지리(地利)는 건시(乾柿)이고, 안동(安東)의 그 지리(地利)는 백자(柏子)였는데, 지금은 건시(乾柿)의 공물(貢物)을 상주(尙州)에 나누어 정하니” *자료 : 한국고전종합DB
또한 이행, 윤은보, 홍언필 등이 집필한 각지의 연혁·토지·인물·물산·문화유적 등의 정보를 담은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 28권(1530년)」과 이준이 편찬한 경상도 상주읍지인 「상산지(1617년)」에 상주지방의 토산(土産) 품목에 감(柿)이 기록된 것을 통해서 상주지역에 감이 많이 생산되었고, 품질 또한 우수하였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참고자료]

외남면 배용식 구술

소은1리 조정에 살았던 김창곤씨는 침술이 뛰어나 주민들에게 침을 놓아 주었으며, 인근 지역에서도 침을 많이 맞으러 왔으며, 오는 손님들에게 감, 곶감을 접대하였는데, 김창곤씨 증조부가 소은1리 조정 도장골 감밭에서 생산한 감과 곶감은 그 당시의 외남 송골감으로 맛이 좋고 품질이 뛰어나 명성이 자자했다.
그리고 이러한 곶감은 지역특산물로 임금님께 진상하였다는 이야기를 증조부로부터 또 옛날 동네어른으로부터 구전으로 전해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과거 임금님에게 진상할 공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마을주민들 사이에서도 구전되어 온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상주시청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1994년 부친께서 감나무를 키우고 곶감을 만들어오던 농사를 이어받아 현재 구릿뜰 농원을 운영하고 있는 배용식씨로부터 마을에서 거주하던 김창곤씨가 증조부와 옛날 동네 어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는 내용을 통해서 이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이후의 기록에서도 상주 감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만든 전국 읍지인 「여지도서」와 경상도 상주목의 읍지인 「상산읍지」에 공물(貢物)을 바쳤다는 의미의 진공(進貢) 항목에 조홍감 (早紅柿子)이 기록되어 있으며, 또 경상도 관찰사로 있던 김세호가 경상도 71개 군현지를 모아 편찬한 경상도 지리지를 정원호가 증보, 첨삭하여 편찬한 「교남지」에 토산(土産) 품목에 감(柿)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서 상주지역의 감이 특산품으로 인정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숙종시대에 활동한 이만부가 한양에서 벼슬을 하다가 고향인 경북 상주 노곡(魯谷)으로 돌아가 집에 심었던 식물에 대한 기록을 책으로 엮은 「노곡초목지」의 기록을 통해서도 상주의 감이 우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곡초목지」에는 소나무·대나무·복숭아나무·감나무·호두나무 등의 28종 초목에 대한 품종과 특성, 재배법 등을 자세히 기록한 책으로, 상주의 대홍시(大紅柿)에 대해 寧堤(지금의 경기도 양주)의 수시(水柿), 大伽倻(지금의 경북 고령)의 고종시(高種柿)와 함께 기품(奇品)이라고 기록하고 있다.